HYU Social Innovation Center
불평등 해소
REDUCED INEQUALITIES
· 다양성을 보장하고 평등한 조직을 만들기 위해 제도와 정책을 수립한다.
· 소수민족, 여성, 장애인 등으로 대표되는 소수인의 입학과 고용에 앞장선다.
· 소수민족, 여성, 장애인 등으로 대표되는 소수인의 입학과 고용에 앞장선다.
불평등 해소
[사랑, 36.5°C] 걱정 없이 공부만 할 수 있었던 행복했던 고시반의 추억 - 박철곤(행정학 78)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훈교수
SDGs-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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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5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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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0
1965년 백남 김연준 박사에 의해 설립된 한양 고시반은 고시에 목표를 둔 학생들에게 걱정 없이 공부만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였고, 덕분에 많은 학생들이 이곳을 통해 꿈을 이뤘다. 공직에 진출해 2008년 국무총리실 차관을 역임한 박철곤 특훈교수도 고시반을 거쳐 간 한양인 중 한 명. 그는 최근 파워엘리트 나무그늘 캠페인을 통해 장학금 1천만 원을 기부했다. 학교에 보은하고 싶다던 평생의 바람을 실천한 박 교수의 얼굴에서는 충만한 자부심이 빛나고 있었다. 글 강현정ㅣ사진 이서연
▲ 박철곤(행정학 78)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훈교수
Q. 학교의 도움을 받아 꿈을 이루셨는데, 후배들을 위해 돌려줄 수 있게 되어 뿌듯하셨을 것 같습니다.
A. 학교로부터 받은 은혜에 비해 너무 적은 금액이라 많이 아쉬웠습니다. 저에게 한양대는 굉장히 각별한 곳입니다. 공부만 해보는 게 소원이었던 제가 이곳에 와서 그 소원을 이루게 되었으니까요. 가난한 공직자였던 저는 학교에 보은하는 마음으로 고시반 후배들 면접지도도 도와주고 특강도 하면서 학교와 인연을 유지해왔습니다. 그러다 이번에 기부를 하게 되었는데, ‘나누어 주려고 가지만 내가 더 받고 오는’ 봉사의 속성을 기부에서도 느꼈습니다. 열심히 일해 번 돈을 후배들과 나눌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굉장히 큰 기쁨을 줬습니다.
Q. 현재는 한양대에서 특훈교수직을 맡고 계신데요,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신지요?
A. 특훈교수(distinguished professor)는 제가 받기 송구스러울 정도로 명예로운 자리입니다. 우리나라 대학에서는 다소 낯선 개념이기도 한데, 특별한 공적이나 공훈이 있는 사람에게 학교가 주는 직책입니다. 저는 공공정책대학원에서 강의도 하고, 요즘은 부설연구소인 ‘갈등문제 연구소’ 업무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 산적한 지역 갈등, 남북 갈등, 계층 갈등, 공공정책과 관련한 갈등을 해결하는 데 한양대가 중요한 역할을 하여 국가발전을 위한 새로운 동력을 만들어내고 싶습니다.
Q. 교수님의 고시반 시절은 어땠는지, 그 시절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A. 저는 어릴 때부터 가난했던 탓에 마음껏 공부를 할 수 없었어요. 육성회비를 내지 못해 시험 보는 날 시험지를 빼앗기고 끝내 중학교를 마치지 못했고, 세상에 힘든 일은 다 해가며 검정고시를 두 개나 보고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방송통신대학을 거쳐 한양대에 편입했습니다. 그리고는 곧바로 고시반 장학생으로 들어왔더니 먹여주고, 재워주고, 책을 사라고 매월 장학금도 주는 겁니다. 아무 걱정 없이 공부할 여건이 이 학교에 들어오는 순간 만들어진 거죠. 제 마음에 얼마나 안도감을 느꼈는지 모릅니다. 절실했던 만큼 저는 학교에 대한 고마움이 남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Q. 학교의 도움으로 학생이 자라고, 그 학생이 선배라는 이름으로 다시 후배들을 이끌어주는 선순환이 이뤄진다는 생각이 듭니다.
A. 흔히 말하지 않습니까. 국적은 바꿔도 학적은 바꾸지 못한다고. 내가 나온 학교가 사회에 기여하는 학교가 될 수 있도록 동문들이 힘을 보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학교의 발전이자 곧 자신의 발전이기도 하니까요. 지금의 제가 있기까지 저는 많은 분의 도움과 장학제도의 혜택을 받았습니다. 장학금은 돈 없는 학생에겐 구원군입니다. 부모님의 도움으로 공부할 수 있다 하더라도 장학금은 젊은이들이 장래를 위해 용기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격려이자 채찍입니다.
Q. 마음은 있어도 선뜻 나서지 못하는 동문들도 많은데요, 그런 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마음은 있어도 금전적으로 기부하기는 어렵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을 겁니다. 저 역시 고소득자가 아니거든요. 많지 않은 금액이지만 저로서는 쉽지 않은 선택이었습니다. 또 원래는 매월 일정액을 나눠서 내려고 했지만, 혹시라도 나중에 제 마음이 변할까봐 눈을 질끈 감고 결정했습니다. 지금은 스스로 잘했다고 생각이 되고, 기회가 되는대로 더 해야겠다고도 다짐합니다. 제가 돈이 많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자유롭게 말할 수 있습니다. 만 원짜리 하나라도 쓰고 누구에게 줘야 돈의 가치가 나옵니다.
Q. 마지막으로 재학생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A. 인생의 모든 가능성을 가진 젊음의 시기는 본인은 잘 모르겠지만 너무도 값지고 고귀한 시기입니다. 이 시기에 자기 개인의 미래, 사회의 미래, 국가의 미래를 위해 큰 꿈을 가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꿈은 꾸는 사람만 이룰 수 있고, 꿈이 커야 작은 꿈이라도 이룰 수 있지요. 식상한 얘기 같지만 젊은이에게 이보다 중요한 얘기는 없습니다.
▲ 박철곤(행정학 78)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훈교수
Q. 학교의 도움을 받아 꿈을 이루셨는데, 후배들을 위해 돌려줄 수 있게 되어 뿌듯하셨을 것 같습니다.
A. 학교로부터 받은 은혜에 비해 너무 적은 금액이라 많이 아쉬웠습니다. 저에게 한양대는 굉장히 각별한 곳입니다. 공부만 해보는 게 소원이었던 제가 이곳에 와서 그 소원을 이루게 되었으니까요. 가난한 공직자였던 저는 학교에 보은하는 마음으로 고시반 후배들 면접지도도 도와주고 특강도 하면서 학교와 인연을 유지해왔습니다. 그러다 이번에 기부를 하게 되었는데, ‘나누어 주려고 가지만 내가 더 받고 오는’ 봉사의 속성을 기부에서도 느꼈습니다. 열심히 일해 번 돈을 후배들과 나눌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굉장히 큰 기쁨을 줬습니다.
Q. 현재는 한양대에서 특훈교수직을 맡고 계신데요,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신지요?
A. 특훈교수(distinguished professor)는 제가 받기 송구스러울 정도로 명예로운 자리입니다. 우리나라 대학에서는 다소 낯선 개념이기도 한데, 특별한 공적이나 공훈이 있는 사람에게 학교가 주는 직책입니다. 저는 공공정책대학원에서 강의도 하고, 요즘은 부설연구소인 ‘갈등문제 연구소’ 업무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 산적한 지역 갈등, 남북 갈등, 계층 갈등, 공공정책과 관련한 갈등을 해결하는 데 한양대가 중요한 역할을 하여 국가발전을 위한 새로운 동력을 만들어내고 싶습니다.
Q. 교수님의 고시반 시절은 어땠는지, 그 시절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A. 저는 어릴 때부터 가난했던 탓에 마음껏 공부를 할 수 없었어요. 육성회비를 내지 못해 시험 보는 날 시험지를 빼앗기고 끝내 중학교를 마치지 못했고, 세상에 힘든 일은 다 해가며 검정고시를 두 개나 보고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방송통신대학을 거쳐 한양대에 편입했습니다. 그리고는 곧바로 고시반 장학생으로 들어왔더니 먹여주고, 재워주고, 책을 사라고 매월 장학금도 주는 겁니다. 아무 걱정 없이 공부할 여건이 이 학교에 들어오는 순간 만들어진 거죠. 제 마음에 얼마나 안도감을 느꼈는지 모릅니다. 절실했던 만큼 저는 학교에 대한 고마움이 남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Q. 학교의 도움으로 학생이 자라고, 그 학생이 선배라는 이름으로 다시 후배들을 이끌어주는 선순환이 이뤄진다는 생각이 듭니다.
A. 흔히 말하지 않습니까. 국적은 바꿔도 학적은 바꾸지 못한다고. 내가 나온 학교가 사회에 기여하는 학교가 될 수 있도록 동문들이 힘을 보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학교의 발전이자 곧 자신의 발전이기도 하니까요. 지금의 제가 있기까지 저는 많은 분의 도움과 장학제도의 혜택을 받았습니다. 장학금은 돈 없는 학생에겐 구원군입니다. 부모님의 도움으로 공부할 수 있다 하더라도 장학금은 젊은이들이 장래를 위해 용기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격려이자 채찍입니다.
Q. 마음은 있어도 선뜻 나서지 못하는 동문들도 많은데요, 그런 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마음은 있어도 금전적으로 기부하기는 어렵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을 겁니다. 저 역시 고소득자가 아니거든요. 많지 않은 금액이지만 저로서는 쉽지 않은 선택이었습니다. 또 원래는 매월 일정액을 나눠서 내려고 했지만, 혹시라도 나중에 제 마음이 변할까봐 눈을 질끈 감고 결정했습니다. 지금은 스스로 잘했다고 생각이 되고, 기회가 되는대로 더 해야겠다고도 다짐합니다. 제가 돈이 많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자유롭게 말할 수 있습니다. 만 원짜리 하나라도 쓰고 누구에게 줘야 돈의 가치가 나옵니다.
Q. 마지막으로 재학생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A. 인생의 모든 가능성을 가진 젊음의 시기는 본인은 잘 모르겠지만 너무도 값지고 고귀한 시기입니다. 이 시기에 자기 개인의 미래, 사회의 미래, 국가의 미래를 위해 큰 꿈을 가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꿈은 꾸는 사람만 이룰 수 있고, 꿈이 커야 작은 꿈이라도 이룰 수 있지요. 식상한 얘기 같지만 젊은이에게 이보다 중요한 얘기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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