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YU Social Service Team
한양대학교 지속가능발전목표 선언문(SDGs)
한양대학교는 ‘사랑의 실천’이라는 건학정신을 바탕으로 세상을 이롭게 하는 인재를 양성합니다.
한양의 인재는 이웃, 지역사회, 나아가 전 세계를 위해 배움을 실천하는 리더로서의 책임을 다할 것입니다.
한양의 인재는 이웃, 지역사회, 나아가 전 세계를 위해 배움을 실천하는 리더로서의 책임을 다할 것입니다.
한양의 인재상은 모든 세계시민이 함께 이루고자 하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의 철학과 맞닿아 있습니다.
우리 한양인은 시대가 요구하는 대학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지속가능발전목표 달성에 함께할 것을 아래와 같이 선언합니다.
1 빈곤 증식
2 기아 종식
3 보건 및 웰빙
4 양질의 교육
5 성평등
6 깨끗한 식수
7 에너지 보장
8 경제성장
9 인프라 구축과 산업화 확대
10 불평등 감소
11 지속가능한 도시와 거주지 조성
12 지속가능한 소비와 생산양식 확립
13 기후변화 대응
14 수자원 보호
15 육상 생태계 보호
16 평화롭고 정의로운 사회 증진과 제도 구축
17 이행수단과 글로벌 파트너십 강화
한양의 지속가능발전목표 행동
[사랑, 36.5°C] 세상을 변화시키는 아름다운 날갯짓 - 김병모 고려문화재연구원장(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SDGs-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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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5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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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2
기부는 어느 정도 이상의 금액을 낼 수 있어야 하는 것, 혹은 특별한 동기가 있는 사람들의 관심사로 나와는 거리가 먼 일이라 생각할 때가 많다. 하지만 기부는 습관이다. 김병모 고려문화재연구원장은 기부란 굳이 거창할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소소하게 자주 나누는 습관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큰 바람을 일으키듯, 세상을 움직이는 훈풍은 어느 한 사람의 통 큰 기부가 아닌 우리 모두의 소소한 나눔에서 피어난다. 글 강현정ㅣ사진 이서연
▲ 김병모 고려문화재연구원장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Q. 교수님은 우리나라의 고고학 1세대로, 오랜 기간 후학을 양성하셨습니다. 한양대에 재직하신 시기가 언제였습니까?
A. 1978년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가 되어 2003년에 퇴임했으니 꼬박 26년을 한양대에 재직했습니다. 내 일생의 중요했던 시기들을 한양대에서 보낸 셈입니다. 당시 건물이 5동 밖에 없었고 전임교수가 100명이 조금 넘는 정도였으니,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학교의 규모가 거의 10배 이상 불어났죠? 우리사회의 성장과 함께 발전해온 한양의 모습을 목도했습니다.
Q. 교수님의 기억에 인상 깊게 남아있는 한양의 모습은 무엇입니까?
A. 한양대는 옛날부터 나눔의 정신이 있는 학교였습니다. 해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학교 주변에 소리 소문 없이 쌀가마를 돌렸고, 교직원들 월급에서 1%씩 떼어 지역구제에 쓰기도 했습니다. 예부터 잘 되는 집안들은 늘 베푸는 집안이었죠. 그저 여유 있는 사람이 갖고 있는 기본적인 도덕 같은 거죠. 대단한 건 아니지만 저도 매년 연말이면 제 연구소가 있는 지역의 동사무소나 기관을 찾아가 어려운 지역주민을 위해 써달라고 쌀을 기부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나눔을 실천하고 싶은 마음이지요.
Q.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기부와 나눔의 중요성을 깨달은 경험이 있으신가요?
A. 저는 공부하는 과정에서 장학금의 위력을 체감한 사람입니다. 9남매의 8형제 중 여섯 번째 아들로 태어났는데, 살림이 어려워 부모님이 항상 형들에게 먼저 등록금을 주고 제게는 꼴찌로 줬습니다. 그러다 서울대 고고인류학과에 1기로 입학했는데, 처음으로 학자금 대출이라는 게 생겨난 겁니다. 4년 내내 학교를 거저 다니고 졸업한 뒤 그 돈을 갚을 수 있어 걱정 없이 대학을 다닐 수 있었습니다. 영국으로 유학을 간 뒤에도 마침 우리 정부가 영국과 과학기술 계약을 맺는 바람에 제가 첫 번째 장학금 수혜자가 될 수 있었고요. 만약 이러한 제도들이 없다면 가난한 학생이 어떻게 공부해볼 엄두를 내겠습니까? 공부를 하고 싶은 사람에게 골고루 기회가 돌아가게 하려면 장학혜택이 더 늘어나야 합니다.
Q. 지난 2006년 문화인류학과 발전기금으로 1천만 원을 기부하셨습니다. 기부를 하게 되신 계기가 무엇이었나요?
A. 문화인류학과는 전공 특성상 고고학 발굴에 학생들을 인턴으로 많이 씁니다. 필드 연습을 안 하면 졸업해도 아무 소용이 없거든요. 그런데 돈이 없어 해외답사를 못 가는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중국을 다녀오려면 적어도 100만원은 드는데, 제가 1천만 원을 내면 학생 10명이 갈 수 있었죠. 그 외에도 적은 금액이라도 학술용역을 맡으면 그 돈을 쪼개서 학생들에게 등록금을 줬는데, 특히 지방에서 온 학생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을 겁니다. 집이 서울이 아닌 학생들에게 서울 생활은 전투와 같거든요. 내 밑에서 교수가 10명, 박사가 20명 나왔는데, 특히 지방 고등학교를 졸업한 제자들이 많이 성공했습니다. 그런 게 보람이지요.
▲ 김 교수는 "만약 학자금대출이나 장학금 제도가 없다면 가난한 학생이 어떻게 공부해 볼 엄두를 내겠습니까? 공부를 하고 싶은 사람에게 골고루 기회가 돌아가게 하려면 장학혜택이 더 늘어나야 합니다." 라고 말한다.
Q. 얼마 전 총장전략기금으로 2천만 원을 또 기부하셨습니다. 퇴임 이후에도 학교에 꾸준히 기부하는 이유가 있으신지요?
A. 제가 아들이 둘인데 둘 다 한양대를 나왔습니다. 장학금 덕에 두 녀석이 혜택을 많이 입었으니, 아들들이 받은 혜택이 다른 학생들에게도 스며갈 수 있도록 갚고 싶었습니다. 바람이 있다면, 저는 아버지 세대에서 기부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자랐지만, 제가 기부하는 것을 보고 아들들도 훗날 여유가 생길 때 나누는 삶을 살았으면 하는 것입니다.
기사 원문 출처 : http://www.hanyang.ac.kr/surl/co5u
▲ 김병모 고려문화재연구원장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Q. 교수님은 우리나라의 고고학 1세대로, 오랜 기간 후학을 양성하셨습니다. 한양대에 재직하신 시기가 언제였습니까?
A. 1978년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가 되어 2003년에 퇴임했으니 꼬박 26년을 한양대에 재직했습니다. 내 일생의 중요했던 시기들을 한양대에서 보낸 셈입니다. 당시 건물이 5동 밖에 없었고 전임교수가 100명이 조금 넘는 정도였으니,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학교의 규모가 거의 10배 이상 불어났죠? 우리사회의 성장과 함께 발전해온 한양의 모습을 목도했습니다.
Q. 교수님의 기억에 인상 깊게 남아있는 한양의 모습은 무엇입니까?
A. 한양대는 옛날부터 나눔의 정신이 있는 학교였습니다. 해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학교 주변에 소리 소문 없이 쌀가마를 돌렸고, 교직원들 월급에서 1%씩 떼어 지역구제에 쓰기도 했습니다. 예부터 잘 되는 집안들은 늘 베푸는 집안이었죠. 그저 여유 있는 사람이 갖고 있는 기본적인 도덕 같은 거죠. 대단한 건 아니지만 저도 매년 연말이면 제 연구소가 있는 지역의 동사무소나 기관을 찾아가 어려운 지역주민을 위해 써달라고 쌀을 기부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나눔을 실천하고 싶은 마음이지요.
Q.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기부와 나눔의 중요성을 깨달은 경험이 있으신가요?
A. 저는 공부하는 과정에서 장학금의 위력을 체감한 사람입니다. 9남매의 8형제 중 여섯 번째 아들로 태어났는데, 살림이 어려워 부모님이 항상 형들에게 먼저 등록금을 주고 제게는 꼴찌로 줬습니다. 그러다 서울대 고고인류학과에 1기로 입학했는데, 처음으로 학자금 대출이라는 게 생겨난 겁니다. 4년 내내 학교를 거저 다니고 졸업한 뒤 그 돈을 갚을 수 있어 걱정 없이 대학을 다닐 수 있었습니다. 영국으로 유학을 간 뒤에도 마침 우리 정부가 영국과 과학기술 계약을 맺는 바람에 제가 첫 번째 장학금 수혜자가 될 수 있었고요. 만약 이러한 제도들이 없다면 가난한 학생이 어떻게 공부해볼 엄두를 내겠습니까? 공부를 하고 싶은 사람에게 골고루 기회가 돌아가게 하려면 장학혜택이 더 늘어나야 합니다.
Q. 지난 2006년 문화인류학과 발전기금으로 1천만 원을 기부하셨습니다. 기부를 하게 되신 계기가 무엇이었나요?
A. 문화인류학과는 전공 특성상 고고학 발굴에 학생들을 인턴으로 많이 씁니다. 필드 연습을 안 하면 졸업해도 아무 소용이 없거든요. 그런데 돈이 없어 해외답사를 못 가는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중국을 다녀오려면 적어도 100만원은 드는데, 제가 1천만 원을 내면 학생 10명이 갈 수 있었죠. 그 외에도 적은 금액이라도 학술용역을 맡으면 그 돈을 쪼개서 학생들에게 등록금을 줬는데, 특히 지방에서 온 학생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을 겁니다. 집이 서울이 아닌 학생들에게 서울 생활은 전투와 같거든요. 내 밑에서 교수가 10명, 박사가 20명 나왔는데, 특히 지방 고등학교를 졸업한 제자들이 많이 성공했습니다. 그런 게 보람이지요.
▲ 김 교수는 "만약 학자금대출이나 장학금 제도가 없다면 가난한 학생이 어떻게 공부해 볼 엄두를 내겠습니까? 공부를 하고 싶은 사람에게 골고루 기회가 돌아가게 하려면 장학혜택이 더 늘어나야 합니다." 라고 말한다.
Q. 얼마 전 총장전략기금으로 2천만 원을 또 기부하셨습니다. 퇴임 이후에도 학교에 꾸준히 기부하는 이유가 있으신지요?
A. 제가 아들이 둘인데 둘 다 한양대를 나왔습니다. 장학금 덕에 두 녀석이 혜택을 많이 입었으니, 아들들이 받은 혜택이 다른 학생들에게도 스며갈 수 있도록 갚고 싶었습니다. 바람이 있다면, 저는 아버지 세대에서 기부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자랐지만, 제가 기부하는 것을 보고 아들들도 훗날 여유가 생길 때 나누는 삶을 살았으면 하는 것입니다.
기사 원문 출처 : http://www.hanyang.ac.kr/surl/co5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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